비폭력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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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비폭력대화

마셜 B. 로젠버그

우리는 전혀 폭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말을 하지만, 종종 본의 아니게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

“그럴 수도 있지.”

대학 시절의 나는 이 말을 자주 했다. 당시에는 그것이 꽤 괜찮은 태도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쉽게 재단하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태도. 나는 그것이 이해와 수용의 언어라고 믿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 말은 이해의 언어가 아니라 방치의 언어에 조금 더 가까웠다.

나는 누군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 왜 그런 말과 행동이 나왔는지를 끝까지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 무엇이었는지, 그 사실 앞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알려고 하기보다 그저 “사람은 원래 다 다르니까”라고 정리해 버렸다.

겉으로는 관대해 보였지만, 실은 깊이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에 가까웠다.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태도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것은 꽤 차가운 무관심이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이런 말을 들었다.
“너는 너무 이성적이야.”

처음에는 타고난 나의 기질이라고 생각했고, 나중에는 억울했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려 했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 했고, 문제를 명확하게 보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구사하던 언어는 사실에 가깝기는 했을지 몰라도, 사람에게는 가깝지 않았다. 정확할 수는 있어도 따뜻하지 않았고, 논리적일 수는 있어도 상대를 안심시키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나는, 상대를 충분히 공감하고 싶었다. 나와 대화하고 난 뒤 그 사람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평온하길 바랬다. 그런데 나는 정작 그 방법을 몰랐다. 나조차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선명하게 설명할 수 없으면서도, 내 언어가 종종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사실만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정말 소중한 사람 앞에서는 누구나 다르게 행동한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이해해 보려고 애쓴다. 함부로 단정하지 않고, 한 번 더 묻고, 한 번 더 살핀다. 그렇게 나의 최대의 노력과 절망을 겪고서야, 내가 사실 대화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모르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이제는 배워야 한다. 나는 대화를 잘하고 싶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계속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 어쩌면 이미 상처받고 있었을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새롭게 만나게 될 사람들과 조금 더 제대로 연결되고 싶었다. 이 책은 그런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우리는 전혀 폭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말을 하지만, 종종 본의 아니게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크게 와닿았던 것은, 우리는 스스로 폭력적이지 않다고 믿으면서도 아주 자주 말로 사람을 다치게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대부분 악의 없이.

그래서 이를 인식하기 위해, 말로 사람을 제대로 다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답은 단순했다. 같은 사실을 두고도 그 사람의 감정을 전혀 헤아리지 않으면 된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 무엇이 부족하고 필요한지를 외면한 채 내 기준의 타당함만 밀어붙이면 된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렇게 느끼는 네가 이상한 거야”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단지 반박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 자체가 무시당했다고 느끼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맞았는가보다, 상대가 어떤 감정과 욕구를 지닌 존재로 그 자리에 서 있는가를 보느냐의 문제였다.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를 존재 자체로 공감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행동이라도 존중받는 느낌을 주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행동이 완벽한 정답이 아니더라도, 느낌과 욕구를 존재 자체로 공감했다면 그 자체로 소중한 위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집요하게 가르쳤다.

비폭력대화 (NVC: NonViolent Communication)

비폭력대화는 네 가지를 중심에 둔다.

  1.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2. ‘느낌’을 알아차리고 표현하기
  3. ‘욕구’를 의식함으로써 자신의 느낌에 대해 책임지기
  4. 구체적으로 ‘부탁’하기

관찰, 느낌, 욕구, 부탁.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막상 내 언어를 돌아보면 이 네 가지가 얼마나 자주 뒤섞여 있는지 금방 드러났다.

나는 사실을 말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안에는 평가가 섞여 있었고, 느낌을 말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상대에 대한 해석을 내뱉고 있었고, 부탁한다고 생각했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명령처럼 들리는 경우가 있었다.

도덕주의적 판단과 가치 판단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 [마태복음 7:1]

우리는 종종 자신의 가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보면 곧장 그 행동을 한 사람의 성격과 수준을 판단한다. 나와 맞지 않는 행동은 쉽게 “이기적이다”, “무책임하다”, “예의가 없다” 같은 말로 바뀐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사실 상대를 설명하기보다 내 욕구와 기준을 드러낼 뿐이다.

나는 존중받고 싶고, 신뢰받고 싶고, 배려받고 싶고, 안정감을 원한다. 그런데 그 욕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상대의 잘못으로 번역해 버린다면 상대는 오히려 거부감을 갖고 스스로를 방어하게 된다,

물론 모든 판단을 버리고 살 수는 없다. 나 역시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있다. 다만 그 가치를 말하는 것과, 그 가치에 맞지 않는 사람을 도덕적으로 단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점을 이 책은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첫 번째,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NVC의 첫 번째 단계다. 바로 ‘관찰’과 ‘평가’를 분리하는 것이다.

관찰과 평가를 섞으면 듣는 사람이 내가 의도한 대로 말을 이해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오히려 우리의 말을 비판으로 받아들이기 쉽고 저항감을 품을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화법 기술이 아니라 관계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처럼 느껴졌다.

“너는 무책임해”는 사실을 전달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해석과 낙인이 붙은 문장이다. 반면 “네가 하기로 한 일을 오늘까지 마치지 못한 것을 봤을 때 나는 실망했다”는 훨씬 다르다. 후자는 상대를 규정하지 않고, 내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는지로 돌아온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자신의 존재 전체가 평가받는 순간 방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보 같다’와 같은 부정적인 꼬리표뿐만 아니라, 중립적이나 긍정적으로 보이는 평가들도 한 사람을 존재 그 자체로 보는 능력을 제한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는 바보 같은 아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본 아이는 가끔 내가 이해 못 하는 일 아니면 예상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아이입니다.”
— 루스 베버마이어

두 번째, 느낌을 알아차리고 표현하기

NVC의 두 번째 단계는 바로 관찰로부터 나의 솔직한 느낌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감정을 표현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생각이나 판단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무시당한 느낌이야”,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아”, “쓸모없는 사람 같아.” 이런 말들은 모두 감정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생각과 해석을 나타내고 있다. 그 안에는 이미 상대에 대한 판단이나 자기규정이 들어 있다. 반면 “슬프다”, “외롭다”, “불안하다”, “서운하다”는 다르다. 이들은 훨씬 더 취약하고 솔직한 언어다.

돌이켜보면 나는 취약한 언어보다 정리된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해 왔다. 감정을 정확한 단어로 말하기보다 상황을 설명하거나 뭉뚱그려진 표현을 하는 쪽을 택했다. 아마 그편이 덜 부끄럽고 덜 흔들리는 방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상대는 내 논리를 들을 수는 있어도 내 마음에는 닿지 못했고, 나 또한 깊이 이해받지 못했다. 결국 감정을 숨긴 언어는 성숙해 보이지만, 관계 안에서는 오히려 멀어지는 언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로 느끼는 것’상대방의 반응과 태도 또는 자신에 대한 ‘나의 생각’ 을 구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 “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같이 느껴져.” — ❌
  • “나는 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외롭고 슬퍼” — ✅

또한 느낌을 표현할 때에는 되도록 뜻이 모호한 말이나 추상적인 말보다 구체적인 느낌을 나타내는 낱말을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좋다’, ‘나쁘다’ 같은 단어로는 듣는 사람에게 우리가 실제로 어떤 느낌을 갖고있는지 알리기 어렵다.

너무나도 다양한 감정 상태를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느낌말들
너무나도 다양한 감정 상태를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느낌말들

세 번째, 욕구를 의식함으로써 자신의 느낌에 대해 책임지기

NVC의 세 번째 단계는 욕구를 의식하는 것이다.

이 책의 핵심 중 하나는 느낌의 근원은 타인의 행동이 아니라 나의 욕구라는 점이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은 느낌의 자극이 될 수는 있어도 원인은 아니다. 처음에는 이 말이 다소 낯설었다. 누가 나를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하면 아주 당연히 그 사람 때문에 상처받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책을 따라 생각해 보니, 상처의 중심에는 늘 내 욕구가 있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존중받고 싶은 마음, 신뢰받고 싶은 마음, 중요하게 여겨지고 싶은 마음, 안전하고 따뜻한 관계 안에 있고 싶은 마음. 누군가의 말과 행동은 바로 내 그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건드릴 뿐이었다.

욕구의 왜곡된 표현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과 비난, 분석과 해석은 대개 충족되지 않은 자기 욕구의 왜곡된 표현이다.

“넌 나를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어”라는 날 선 비판은 사실 이해받고자 하는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고 있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욕구를 평가, 해석, 비판 등을 사용해서 간접적으로 표현하면 상대는 그 말의 숨겨진 욕구를 눈치채기보다는 단순한 비판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비판을 들은 상대는 당연히 자기방어에 나서거나 반격하게 된다.

즉,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공감받기를 원하면서 그 사람의 행동을 비판하거나 분석하는 식으로 욕구를 표현한다면 도리어 역효과를 내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신의 어떤 욕구나 기대, 희망, 가치가 현재 충족되지 않고 있는지 명확히 알고, 욕구와 느낌을 잘 연결해 표현할 수록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공감으로 반응하기가 더욱 쉬어진다.

“나는 ~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을 느낀다”

분노는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자명종

“우리가 화가 나는 것은 결코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화가 날 때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서 잘못을 찾는다. 우리 스스로 신의 자리에 앉아서 상대방이 무슨 잘못을 했고 어떤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비난하거나 판단한다. 이것이 바로 분노의 원인이다.

작가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머릿속에서 분석하며 그들에게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우리 분노에 대한 책임에서 완전히 분리시키고,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주의를 집중할 때 좀 더 나은 방법으로 삶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모든 분노는 결국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노는 지금 그 욕구가 충족될 가능성이 낮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자명종이다. 이 표현이 좋았다. 분노를 억누르거나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그 밑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들어 보라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했나. 어떤 가치가 무시당했다고 느꼈나. 그 질문으로 내려가면, 분노는 단지 폭발해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이해해야 하는 신호가 된다.

의로운 분노에 동참하는 대신, 자신과 다른 사람의 욕구에 공감으로 연결하자.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상대가 나를 이해해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필요한 단계가 하나 있는데,
바로 상대방에게 먼저 공감해 주는 것이다.

상대방도 화가 난 상태에서는 우리의 느낌과 욕구를 듣기 어렵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 말을 들어주기를 바란다면 먼저 그 사람에게 공감해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우리의 공통된 인간성을 느낄 수 있게 되고, 진심으로 서로의 고통을 들어줄 수 있게 될 것이다.

정서적 노예에서 정서적 해방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깊게 남은 부분인데, ‘정서적 노예’에서 ‘정서적 해방’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였다. 느낌에 대한 책임감을 키우며 다른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자유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살 수 있기까지 우리는 대게 세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보인다.

1. 정서적 노예 단계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돌보기 위해서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부인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누군가의 감정을 내 책임처럼 떠안고, 상대가 괴로워하면 내가 당장 뭔가를 해결해 줘야 한다고 느끼는 상태. 많은 관계에서 나는 이 경향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낀다는 이유로, 상대의 감정을 대신 책임지려 들었다. 하지만 그 태도는 결국 가까운 사람들을 부담스럽게 느끼게 만든다. 특히 연인 관계에서 상대의 느낌에 책임지려는 태도는 그 관계를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된다.

“관계에서 내가 내 중심을 잃는 것은 참을 수 없어. 하지만 저 사람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거기서 그저 벗어나고 싶어져.”

2. 얄미운 단계

이 단계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느낌에 책임을 지고 나를 희생하면서 남의 기분을 맞춰 주며 살 때에 우리가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또 그동안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으며 내면의 소리를 얼마나 무시하고 살았는지 깨닫게 되어 분노를 느낄 수도 있다.

저자는 이를 얄미운 단계라고 말한다. 이 단계에서는 다른 사람의 느낌이나 욕구에 대해서 “그건 네 문제야. 난 네 느낌에 책임이 없어.” 처럼 얄미운 말을 하며 선을 긋고, 배려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완전히 반대로 가는 것도 답은 아니다. 이전보다 솔직해 보일 수는 있어도, 여전히 연결을 만들지는 못한다. 또한 자신이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여전히 두려움과 죄책감을 느낄 수 있어 관계에서의 욕구 표현이 딱딱하고 고집스럽게 들릴 수 있다.

3. 정서적 해방 단계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서는 자신의 욕구를 결코 충족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며, 상대의 욕구 충족을 똑같이 존중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바를 분명하게 표현하게 되는 정서적 해방 단계이다.

상대의 욕구를 존중하면서도 내 욕구를 잃지 않는 상태. 죄책감이나 두려움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난 연민으로 반응하는 것. 상대를 위해 나를 버리지도 않고, 나를 지키기 위해 상대를 밀어내지도 않는 것. 이 균형이야말로 내가 오래 배우고 싶었던 태도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 사람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도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 둘 다 인생을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 같이 성장하고 서로 받아 주고 사랑하는 것이다.’

네 번째, 부탁하기

NVC의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부탁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분석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관찰하고 느끼고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행동을 부탁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표현해야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욕구에 더욱 기꺼이 반응하게 될까.

긍정적인 행동언어 사용하기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 말고, 우리가 원하는 것명확하고, 긍정적이며, 구체적인 행동 언어로 부탁한다. “~를 하지 마”라고 하면 실제로 무엇을 부탁하는 건지 분명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저항감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런데도,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모른다는 인식 부족이 좌절감과 우울증을 가져오는 중요한 요인임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부탁은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본인에게도 어려운 것을 타인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더 어렵다.
부탁은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본인에게도 어려운 것을 타인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더 어렵다.

느낌과 욕구를 의식하며 부탁하기

우리는 종종 부탁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불만을 흘리거나 상대가 눈치채 주기를 기대한다. 더 문제는 나 자신도 정확히 무엇을 바라는지 모를 때가 많다라는 점이다.

“그러지 마”는 쉽지만, “그러면 대신 무엇을 해 주었으면 하는가”는 생각보다 어렵다. 그런데 원하는 것을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결국 추측해야 한다. 그리고 추측에 기대는 관계는 쉽게 어긋난다.

공감하기

현존: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그곳에 그대로 있어라.

우리는 공감하는 대신 상대방을 안심시키고 조언을 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거나, 우리의 견해나 느낌을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와 달리 공감은 상대방이 하는 말에 우리의 모든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상대방이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고 이해받았다고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주 안심시키려 했고, 설명하려 했고, 더 나은 해석을 제시하려 했다. 그 순간의 나는 상대를 돕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 불편한 감정의 자리에 오래 머무를 용기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공감이란 뭔가를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섣불리 덧붙이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자리에 함께 있어 주는 일이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유능해지려 하기보다, 먼저 ‘현존’하는 것. 그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매 순간 느낀다.

책에서 본 예시 중 기억나는 것이 있다. 여자친구가 거울을 보며 “나 오늘 진짜 별로야.” 라고 했을 때,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나는 아마 “엥 무슨 소리야, 오늘 엄청 괜찮은데”라고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본인 눈에는 별로인 것 같음이 확실해진다면 “왜, 내 눈에는 엄청 예쁜데”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본인의 외모를 보고 정이 떨어질까 봐 신경쓰이나? 판단하고 안심시켜 주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내 눈에만 이뻐서 다행이다” 등등… 여러 말들을 꺼낼 것이다. 그런데 책에서 말하는 한 문장이 뒤통수를 쳤다. 앞으로는 판단하고 안심시키고 내 의견을 전달하기보다,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더 들어볼 것 같다. “오늘 네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 라고.

우리는 특별한 존재임을 기억하자.

이 책은 다른 사람에게만 비폭력적으로 말하라고 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에도 같은 태도를 적용하라고 말한다. 수치심과 자기비판으로 자신을 몰아붙여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다는 욕구에서 변화를 시작하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우리가 수치심과 죄책감을 기반으로 행동을 바꾸게 된다면, 자기혐오를 배우며 자라게 되고, 그것에서 나온 행동은 결코 자유롭지도 즐겁지도 않다.

자책과 내면의 강요를 욕구로 바꾸기

우리가 누군가를 가리켜 잘못됐다거나 나쁘다고 할 때 그 본뜻은 그 사람의 행동이 우리의 욕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비판의 대상이 자신이라면, ‘나는 지금 나 자신의 진정한 욕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한 행동으로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고 있는가, 아닌가라는 관점에서 우리가 자신을 평가한다면, 그 평가로부터 배울 가능성이 훨씬 크다.

애도와 자기 용서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신의 욕구와 가치를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본다. 그렇게, 수치심과 죄책감이 드는 행동을 하기로 선택했던 예전의 자신에게 관심을 돌려 다음과 같이 물어보자.

“너는 그때 어떤 욕구를 충족하려고 했던 거야?”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애도하는 과정에서 당시 내 스스로의 선택이 어떤 욕구를 충족하는데 못 미쳤는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선택도 당시에는 나름대로 삶에 기여하고자 하는 시도였음을 이해하게 되며 자기 용서와 공감을 할 수 있게 된다.

자기 공감을 하는 데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두 부분이다. 과거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는 자신처음에 그 행동을 선택한 자신을 모두 연민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애도와 자기 용서 과정으로 자책과 우울에서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배우고 성장할 수 있게 된다.

감사하기

감사함을 줄 때나 받을 때나 종종 어색하거나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 이 책을 통해 그 원인을 조금 알게 되었다.

칭찬은 호의적으로 들리더라도 종종 판단처럼 작동할 수 있다. 반면 진짜 감사는 상대를 조종하거나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 기쁨을 나누기 위해, 그 사람 덕분에 더 충만해진 삶을 함께 기뻐하는 데 가깝다.

감사 표현의 세 가지 요소

  1. 우리의 행복에 기여한 그 사람의 행동
  2. 그 행동으로 충족된 나의 욕구
  3. 그 욕구들이 충족되어 생기는 즐거운 느낌

칭찬을 받을 때나 줄 때 모두, 행복에 기여한 행동, 그 행동으로 인한 느낌과 충족된 욕구를 듣거나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으로써 우리 모두가 서로의 삶의 질을 높이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얻은 점이 있다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대화를 바라보는 태도였다. 대화는 두 명 이상의 사람이 모여 그저 하고 싶은 말을 주고받는 일이 아니라,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배워야 하는 영역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우리는 대화하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각자 자라온 환경과 관계 속에서 자기만의 말투와 반응을 익히고, 그것이 굳어진 채 살아간다. 그러다 정말 가까운 사람과 부딪히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언어의 한계와 대면하게 된다. 내게는 그 충돌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고, 대화 역시 배워야 하는 것일 수 있겠다는 의심이 시작되었다.

예전에는 대화를 어느 정도 타고나는 감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원래 따뜻하고, 어떤 사람은 원래 무뚝뚝하며, 그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래서 대화의 충돌은 어쩌면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대화는 배워야 하는 영역이다. 관찰과 평가를 분리하는 법, 느낌을 정확히 말하는 법, 욕구를 알아차리는 법, 부탁을 명령이 아닌 부탁으로 말하는 법, 상대의 말을 조급하게 고치지 않고 끝까지 들어 주는 법. 이것들은 성격보다 훈련에 가깝다.

그래서 오히려 희망이 생겼다. 지금까지 잘하지 못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못 하리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르는 상태로 관계를 망치는 것은 안타깝지만,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는 배울 수 있다. 더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진실하게 듣고, 계속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 내게 이 책은 바로 그 출발점이다.

결국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은 하나다.

사람은 사실보다 감정과 욕구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대화란 옳고 그름을 겨루는 기술이 아니라, 서로의 세계를 다치지 않게 건너가는 법이라는 것.

나는 여전히 서툴다. 여전히 순간적으로 평가부터 떠오르고, 여전히 불편한 감정 앞에서 해결책을 꺼내고 싶어지며, 여전히 객관적 사실과 현실의 언어 뒤로 숨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그것이 이해가 아니라는 것을. 공감 없는 정확함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지를.

이제는 “그럴 수도 있지”에서 멈추고 싶지 않다.

자세히 알고 싶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 무엇이 필요했는지, 그 말 뒤에 어떤 바람이 숨어 있었는지. 그리고 나 역시 말하고 싶다.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이 책은 대화를 잘하는 법을 알려준 책이라기보다, 누군가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 법을 가르쳐 준 책에 가깝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배우고 싶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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